왜 왔는가?

도피성: 억울한 살인자를 위해 준비된 마지막 도피처

도피성 제도란

도피성 제도는 고대 이스라엘의 정치법이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율법에 의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그 죗값을 치러야 했는데, 이는 고의의 여부와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들은 살인자를 찾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악의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만 사람이 복수를 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런 연유로 실수로 살인하고 만 사람을 보고하고자 이 제도가 생겼다.

민수기 35장 11절, 도피성

도피성에 대한 상세정보

위치

도피성은 레위인에게 허락된 48개 성읍 중 6개였으며, 3개는 가나안 지역에 있었고 나머지 3개는 요단강 동편에 있었다. 도피성 중 가나안 지역에 있었던 3개는 각각 헤브론과 세겜 그리고 갈릴리의 게데스며(여호수아 20:7), 요단강 동편에 있던 3개는 각각 길르앗 라못, 베셀, 바산의 골란이다(여호수아 20:8). 각 성읍들은 이스라엘 어디서든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전승에 따르면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 ‘도피성’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어서 도피하는 자가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상세한 제도

만약 어떤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가정해 보자. 나무를 하다가 도끼 자루에서 날이 빠졌는데 그만 지나가던 사람이 변을 당했다든지, 바위를 옮기는 작업을 하던 중 바위를 놓쳐서 아래에 있던 사람이 우연히 목숨을 잃고 만다든지,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 이때 이렇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희생당한 이의 가족 등에게 복수를 당하기 전에 도피성으로 들어가면 그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또한 꼭 이스라엘인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에 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피성에 피신하는 것이 가능했다(민수기 35:15, 여호수아 20:9). 도망자는 성읍에 도착하면 그곳의 지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지도자는 그를 받아들여서 성 안에 지낼 곳을 마련해주었다(여호수아 20:4).

도피성
악의 없이 사람을 죽이고 만 모든 죄인들을 위해 준비된 장소, 도피성.

하지만 이렇게 피신했다 해서 완전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회중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정말로 사실인지 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의로 사람을 죽였음이 드러나면 그는 도피성에 있다 해도 죽임을 당했다. 그 죄는 돈으로 대신할 수 없고 반드시 생명으로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고의성을 증명하려면 두 명 이상의 증인이 반드시 필요했다(민수기 35:30~33).

언제 나갈 수 있나?

도피성으로 피신한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곳에 거해야 했다. 이것은 언뜻 생각해보면 무척 불합리한 제도인데, 왜냐하면 어떤 살인자가 성읍에 도착했는데 바로 다음날 대제사장이 죽는다면 그는 단 하루 만에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제사장이 살인자보다 젊다면 그는 대제사장이 급사하지 않는 이상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그만인 제도가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애당초 한 집단의 질서가 운이 아니라 공평 아래 통제되게끔 정하는 규범이 바로 법이다. 그런 법에서 이런 볼불복의 요소를 넣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사위
공평해야 할 법에서, 운의 요소를 넣었다는 점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 제도들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한 그림자다(히브리서 10:1). 과연 도피성 제도는 어떤 일에 대한 그림자로 알려 주신 것일까? 지금부터 그 부분에 집중해보자.

도피성 제도는 모형과 그림자

먼저 도피성 제도 속 대제사장은, 우리 영혼을 죄에서 건져주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5:8~10)

그렇다면 제도 속에 등장하는 ‘실수로 살인한 자’들은 누구인가? 이는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늘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내려오셔서 누구를 위해 죽으셨는가? 바로 모든 인류를 위해서다(요한복음 3:17 참조). 그리고 그 모든 인류가 ‘실수로 살인한 자’들이라면, 그 실수로 살인한 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도피성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인류의 본향(원래 있었던 곳)이 하늘임을 증거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 15절, 도피성

하늘에서 죄를 짓고 쫓겨난 우리들.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죄의 형량을 채우고 있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입장으로 오셨다. 그리고 알려주셨다. 왜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도피성 제도 속에 담긴 그리스도의 희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구약의 율법은 예수님께서 왜 도피성인 이 지구에 오셔야 하는지 알려준다. 성경은 우리가 지은 죄의 대가가 사망(로마서 6:23)이라 한다. 다시 말해 무슨 수를 써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77억 모든 인류는 과거 그만한 범죄를 저질렀던 존재라는 뜻이다. 인류는 자신이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이다. 그것도 죽어야 할 죄를 지은 사형수다.

사형수가 죗값을 치르는 방법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죽는 것이다. 하지만 죗값을 다 치렀어도 죽어버린 후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서 죄도 용서받고 우리도 살기 위해서는, 우리 대신 자신의 생명을 던져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는 죽기로 작정된 사람을 놓아주면 그 사람이 대신 죽음을 당해야 했던 과거 구약의 법에 근거한다(열왕기상 20:42). 의인을 위해 대신 생명을 버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죄인을 위해 누군가 대신 죽는다는 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감당하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6~8)

그래서 일찍이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한복음 1:29)이라 했다.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묵묵히 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이는 우리를 본향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우리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도피성인 지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