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왔는가?

죄 사함 뜻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

죄 사함(Forgiveness of sin)은 말 그대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뜻이다. 죄 사함이란 단어는 필연적으로 ‘죄인’이라는 단어를 동반하는데, 타 종교에서는 ‘죄인’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죄 사함을 강조하는 종교는 기독교가 거의 유일함을 알 수 있다. 유독 기독교에서는 죄인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오죽하면 죄인 소리 듣기 싫어서 교회에 가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에서, 아무 이유 없이 선하고 선한 인간들을 죄인이라고 하였을까? 결코 아니다. 성경은 왜 우리가 죄인이며 왜 죄 사함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필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죄 사함 그리고 죄

교회에 다니는 이들에게 “죄의 근원에 대해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먼저 떠올린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뱀의 미혹으로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우리들이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인가?

사실 에덴동산의 역사는 단순히 한 남녀의 타락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에덴동산의 역사는 모든 인류의 범죄 과정이 담긴 비유다. 이사야 14장의 바벨론 왕과 에스겔 28장의 두로 왕의 내용과 연결해서 에덴동산의 역사를 살핀다면, 타락한 천사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죄의 근원도 알 수 있다.

에덴동산, 죄 사함
에덴동산의 역사는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해 보여주는 그림자다.

죄란 무엇인가

우선 에스겔 28장에 등장하는 두로 왕은 하늘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천사였다. 그는 하나님의 성산에서 화광이 발하는 보석 사이를 왕래하였지만, 그 영광이 넘친 나머지 교만하여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쫓겨나고 말았다(에스겔 28:12~17).

그리고 이사야 14장의 바벨론 왕도 마찬가지로, 그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는 영광된 지위에 있었으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결국 하나님과 대등한 자가 되려는 마음까지 품고 말았다. 그 대가로 그는 반역죄를 짓고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다(이사야 14:4~15).

위의 두 인물은 성경에 그저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대표격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앞서 에덴동산의 역사가 위의 두 인물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는데, 에스겔 28장에 그 단서가 기록되어 있다.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에스겔 28:12~13)

다들 알고 있겠지만 에덴동산의 등장인물(?)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이 전부다. 두로 왕이 있었던 에덴은 그럼 어디란 말인가? 이는 성경에 또 다른 에덴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덴’이라는 공간이 단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만 국한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교만했던 두로 왕과 바벨론 왕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단순한 사연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는 물론이고 이 땅에 태어나기 전 모든 인류의 마음속 작용까지도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힌트다.

죄 사함, 죄의 의미, 죄
하나님의 자리를 노리고 교만한 마음을 품었던 인생들.

죄란 무엇인가? 성경이 알려주는 인류의 죄란, 과거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일 수 없고 교만했던 죄로 이 땅에 쫓겨 온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노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들을 ‘잃어버린 자’라고 칭하셨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4~7)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 죄를 짓고 쫓겨난 존재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잃어버린 자’로 비유하시며, 모든 인류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큰 이유는 단순히 당신께 저질렀던 죄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 죗값을 친히 감당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을 주려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자신에게 반역했던 죄인들에게 죄 사함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께서 소경된 자를 고치시다, 카를 블로흐, Carl Bloch
예수께서 소경된 자를 고치시다 – 카를 블로흐(Carl Bloch) 作

죄 사함, 정확히 무엇인가

그렇다면 정확히 죄 사함은 무엇일까? 로마서에는 인류가 지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6:23). ‘죄 사함’이 ‘죄를 용서받는다’는 뜻이고 죄의 대가는 죽음이니, 죄 사함이란 곧 죽음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이 없어진 상태를 우리는 두 글자로 ‘영생’이라 표현한다. 정리하자면 죄 사함이란 영생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죄 사함 즉 영생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죄가 시작된 에덴동산 속에 그 해답도 존재한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쫓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생명과’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추가 조치를 취하신다. 왜냐하면 그 생명과 속에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다시 영생할 수 있는 효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2절, 창세기 3장 24절, 죄 사함

결국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것이라기 보단 생명과를 먹지 못하여 죽게 된 것이다. 앞서 아담과 하와의 역사가 모든 인류에게도 해당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부분은 생명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만 먹으면 영생할 수 있었듯, 모든 인류도 생명과만 먹으면 죄 사함 그리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생명과는 무엇인가? 그 답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4~55)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한다. 앞서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한다’는 말씀과 연결해보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바로 생명과의 실체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26장 26절, 죄 사함

유월절 떡과 포도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이자 생명과를 먹는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속에 죄 사함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이제 인류는 유월절만 지키면 생명과를 먹는 것과 동일하게, 죄에서 해방 받고 영생을 얻는다.

결론

과거 조선시대에는 반역을 저지르면 3족을 멸했으며, 중국의 경우 9족을 멸할 만큼 그 죄를 엄하게 다스렸다. 이를 통해 천국의 왕이셨던 하나님을 대적한 죄가 과연 얼마나 무거운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오시어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시어 인류에게 죄 사함의 길을 열어주셨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할 것이다.

지은 죄를 망각하였다 해서 그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죄라면 진정한 회개를 이루어 사함을 입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며 은혜다.